석유 부국 이란, 주유소가 말라가다 - 전쟁, 봉쇄, 리알 폭락이 만든 휘발유 대란
세계 4위 원유 매장국인 이란에서 휘발유가 바닥나고 있다. 전쟁으로 파손된 정유시설, 미국 해군 봉쇄로 끊긴 수입, 그리고 급락하는 리알화와 보조금 축소가 겹치면서 테헤란부터 국경 도시까지 주유소 앞 줄이 일상으로 굳어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최근 보도한 현장 상황과 각국 후속 보도를 종합하면, 위기는 이미 펌프를 넘어 택시·화물·배달 노동자의 생계와 거리 시위로 번지고 있다.
테헤란 주유소에서 운전자가 주유하는 모습. 최근 몇 주간 심야에도 긴 줄이 이어지고 있다.

## 심야에도 줄이 끊이지 않는 주유소
이란 여러 도시에서 운전자들은 탱크가 반만 비어도 주유소로 달려간다. 8월 말 뉴욕타임스가 마슈하드·이스파한·반다르아바스 등지 주민을 인터뷰했을 때, 새벽 2~3시 거리에도 차량 행렬이 남아 있었다. 30세 실직 교사 레이하네는 “자정이 지나 거리를 지나도 거대한 줄이 서 있다”고 말했다.
9월 들어 상황은 더 나빠졌다. WSJ와 이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일부 도시 주유소는 물량이 떨어져 문을 닫았고, 동북부 아리안샤흐르의 한 운전자는 가족과 함께 주유소에 발이 묶인 채 “내일까지 휘발유가 없다고 한다”고 영상에서 호소했다. 소셜미디어에는 다음날 아침 주유를 위해 차 안에서 밤을 새는 장면이 퍼졌다.
테헤란과 인근 도시 주유소 앞에 늘어선 차량과 오토바이. 한 대당 주유량이 제한되는 곳도 있다.
하루 소비량은 대략 1억3,200만~1억3,500만 리터, 국내 생산은 1억1,200만~1억2,200만 리터 안팎으로 집계된다. 국영 정유·유통공사 쪽은 최근 5개월 평균 하루 약 1,000만 리터 부족을 인정했다. 평소 이 공백은 수입으로 메웠지만, 미국이 7월 중순 페르시아만 쪽 항만 봉쇄를 재개한 뒤 휘발유 반입이 사실상 끊겼다. 전쟁 중 정유시설 피폭으로 국내 생산도 줄어든 상태다.
## 보조금을 깎고 가격을 올리다
이란 휘발유는 오랫동안 세계 최저가권이었다. 정부는 이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이달 초 대변인 파티메 모하제라니는 월 110리터를 넘는 사용분에 대해 리터당 10만 리알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현행 누진 구조는 대략 이렇다.
- 월 60리터까지: 리터당 1만5,000리알
- 추가 50리터(합계 110리터)까지: 리터당 3만 리알
- 110리터 초과: 리터당 10만 리알 (자유시장 환율 기준 약 4센트)
값싼 쿼터를 다 쓴 뒤 소형차 한 대를 가득 채우려면 약 2달러, 트럭은 약 5달러가 든다. 다수 가구 월 소득이 100~250달러 수준으로 보도되는 나라에서 작지 않은 부담이다. 가격 인상 발표 직전 사재기가 일어나 일부 주유소가 먼저 바닥을 드러냈다.
테헤란 거리의 주유 대기 행렬. 보조금 축소와 가격 인상 소식이 퍼질수록 줄이 길어졌다.
정부는 소량 이용자의 가격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2019년 보조금 삭감이 전국 시위로 번져 수백 명이 숨진 기억을 의식한 조치다. 그러나 이미 월 배급량을 줄인 상태에서 초과분 가격까지 올리자, 직업적으로 많이 쓰는 택시·트럭·배달 기사들의 반발이 커졌다.
## 리알화 붕괴와 말라가는 석유 달러
연료 대란의 배경에는 외화 고갈이 있다. WSJ는 별도 기사에서 미국 해군 봉쇄 이후 페르시아만을 빠져나간 이란산 원유가 사실상 없다고 전했다. 봉쇄 이전에 바다 위에 떠 있던 재고로 버티고 있으나, 그 물량도 가을이면 소진될 수 있다는 추적이 나온다.
리알화는 달러당 230만 리알까지 밀리며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 인플레이션 수치는 출처마다 다르지만, 공식 12개월 평균 70% 안팎에서부터 일부 보도의 세 자릿수 주장까지 스펙트럼이 넓다. 식품·담배 등 생필품 상승률은 그 이상이라는 지적이 반복된다.
상점 계산대에서 두꺼운 리알 다발을 세는 모습. 통화 가치 하락이 연료 보조금 재정까지 압박하고 있다.
역설은 분명하다. 이란은 원유는 많지만 휘발유를 충분히 정제하지 못한다. 국내 수요의 약 10% 이상을 수입에 의존해 온 구조가, 봉쇄와 정유시설 피해와 맞물리며 노출됐다. 품질을 낮춘 석유화학 혼합유를 섞어 생산량을 메우려는 움직임도 의회 에너지위 쪽에서 거론됐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의 유조선. 미국 해군 봉쇄가 원유 수출과 정제유 수입을 동시에 조이고 있다.
## 바퀴가 멈추면 생계가 멈춘다
타격은 운송 노동자에게 집중된다. WSJ에 따르면 동부 케르만주 택시 기사 120여 명이 지난주 보조금 연료 삭감에 항의했다. 한 기사는 “승객을 20일 기다리고, 연료 부족과 10일을 싸운다”고 했다.
이란 최대 승차·배달 플랫폼 스냅(Snapp) 기사들도 여러 도시에서 운행을 멈췄다. 전국 기사 수가 약 300만 명으로 거론되는 이 업종에서 “요금으로는 삶의 바퀴가 돌지 않는다”는 팻말이 나왔다. 셈난의 한 시위 영상에서 기사는 “전부 멈췄다. 아무도 일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라크 국경 화물차 기사들은 파업에 들어갔고, 호르무즈 해협 항구 반다르아바스 트럭커들은 운행 중단을 경고했다. 항만 기사들은 “가격 인상 부담을 기사와 가족이 주머니에서 낸다. 더 이상 이 압박을 견딜 수 없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오토바이와 승용차가 뒤섞인 주유 대기 줄. 스냅 기사와 택시 노동자의 생계가 연료 배급에 묶여 있다.
## 정권이 버티는 이유, 국민이 버티는 한계
미국 쪽은 봉쇄와 2차 제재로 이란을 글로벌 금융·물류망에서 더 잘라내려 한다. 이란 지도부는 보조금을 한꺼번에 없애면 2019년의 폭발이 재연될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재정으로는 예전 수준의 초저가 연료를 유지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가계 고통은 커지겠지만 협상 테이블에서의 양보는 별개 문제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정권이 군사·지정학 목표를 위해 얼마만큼의 경제 고통을 감수할지가 관건이라는 것이다.
당분간 거리는 두 개의 줄로 나뉠 가능성이 크다. 하나는 주유소 앞의 차 행렬이고, 다른 하나는 일거리를 잃은 기사들의 항의 행렬이다. 원유는 땅속에 남아 있어도, 펌프에 기름이 나오지 않는 나라가 된 이란에서 경제적 압박은 이제 추상적인 제재 통계가 아니라 빈 연료통과 멈춰 선 택시 미터기로 체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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