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민군에 의한 1950년 서울대병원에서의 집단 학살 사건

Posted by 아디노
2025. 4. 1. 08:17 Media

1950년 서울대병원 집단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6·25 전쟁) 초기, 북한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한 직후 발생한 비극적인 사건으로, 국군 부상병, 의료진, 민간 환자 및 그 가족 등 약 700명에서 1,000명에 달하는 인원이 무참히 살해된 전쟁 범죄로 기록됩니다. 이 사건은 1950년 6월 28일,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이 북한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벌어졌으며, 당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부속병원(현 서울대학교병원)에 수용되어 있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달 초 전체 회의를 열고, 6·25전쟁 당시 북한 인민군이 국군 부상병과 민간인 환자 1천여 명을 총살한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에 대해 '집단 학살'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매우 늦었지만 우리만 외면한 진실을 찾아서 다행입니다.




배경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전쟁 발발 직후 서부전선에서 부상당한 대한민국 국군 병사들은 서울 시내 여러 병원으로 후송되었고, 그중 서울대병원은 주요 수용 시설 중 하나였습니다. 병원에는 중상자를 포함한 약 1,000명에 가까운 환자가 있었으며,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과 일부 환자 가족도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전쟁 3일 만에 북한군이 미아리 고개를 넘어 서울로 진입하면서, 피난이 불가능했던 병원 내 사람들은 고립된 상황에 놓였습니다.

사건 경과

6월 28일 아침, 북한 인민군(특히 제9 탱크여단으로 추정되는 부대)이 서울대병원에 난입했습니다. 병원 경비를 맡고 있던 국군 소규모 부대(약 1개 소대)는 저항을 시도했으나 전멸당했습니다. 이후 북한군은 병원을 완전히 장악하고, 병원 내부에 있던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학살 방식: 처음에는 병동을 돌며 총으로 환자들을 사살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총알 낭비를 줄이기 위해 총검으로 찔러 죽이는 방식으로 전환했습니다. 일부는 병원 밖으로 끌려나와 집단 총살되었고, 생존자를 색출해 보일러실에서 생매장하거나 불태우는 만행도 저질러졌습니다.

희생자: 국군 부상병뿐 아니라 민간 환자, 의료진, 그리고 병원에 남아 있던 환자 가족까지 포함되었습니다. 특히 정신병동 환자들도 국군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이유로 살해되었습니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추정치는 700명에서 1,000명에 달합니다.

의료진 납치: 일부 의사, 간호사 등 의료진은 학살을 피해 살아남았으나, 이후 북한군 부상자를 치료하기 위해 납북되거나 강제로 동원되었습니다. 저항하는 경우 공개 처형으로 본보기로 삼기도 했습니다.
학살은 약 세 시간 동안 이어졌으며, 이후 시신들은 병원 마당에 방치되거나 창경궁 앞 도로로 옮겨져 소각되었습니다. 병원은 이후 북한군 부상자 치료를 위한 기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사건의 여파와 은폐

서울이 1950년 9월 국군과 유엔군에 의해 수복될 때까지 이 사건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수복 후 참상이 드러났으나, 희생자 대부분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전쟁의 혼란 속에서 정확한 기록이 남지 않았습니다. 북한군은 병원 기록을 파괴해 증거를 없애려 했으며, 일부 생존자들은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기념과 진실 규명

추모비: 1963년 7월 29일, 한국일보사의 “전국 반공 애국유적 부활운동”의 일환으로 서울대병원 내에 ‘이름 모를 자유전사의 비’(현충탑)가 세워졌습니다. 이 비석에는 “1950년 6월 28일, 자유를 위해 싸운 이름 모를 부상병과 입원환자들이 참혹히 학살된 곳”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문학적 기록: 작가 강신재의 소설 임진강의 민들레에서 이 사건의 생존자가 등장하며, 역사학자 김성칠의 1950년 6월 30일자 일기에도 학살이 언급됩니다.

최근 인정: 2025년 3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약 20년간의 조사 끝에 이 사건을 북한군에 의한 ‘집단 학살’로 공식 인정할 방침을 밝혔습니다. 이는 그간 국군 및 경찰의 잘못에 초점을 맞췄던 조사에서 북한군의 전쟁 범죄를 처음으로 규정한 사례입니다.

의의와 논란

이 사건은 제네바협약(부상자와 병자 보호에 관한 규정)을 명백히 위반한 전쟁 범죄로, 공산주의 세력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됩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대한민국 내에서조차 충분히 조명되지 않았고, 친북 성향 정권 하에서는 의도적으로 축소되었다는 비판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또한, 이 사건이 이후 대한민국 정부의 보도연맹 학살 등 강경 대응을 촉발한 요인 중 하나로도 해석됩니다.
서울대병원 학살 사건은 한국전쟁의 비극적 단면을 보여주며, 전쟁의 참혹함과 희생자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동시에 역사적 진실 규명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