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의회 의장 칼리바프 “국민이 굶주리면 군사력으로도 버틸 수 없다” 경제 위기 공개 인정
이란 의회 의장 모하마드 바게르 칼리바프(Mohammad Bagher Qalibaf)가 자국 경제 위기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파격적인 경고를 내놓았다. “군사력이 아무리 강해도 국민이 굶주리고 경제 성장과 생산이 없다면 우리는 버틸 수 없다”는 발언이다. 이 발언은 미국이 이란에 대해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준비하는 시점에 나와 국제적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칼리바프 의장은 8월 20일(목) 바그다드 주재 이란 대사관에서 열린 이란·이라크 경제인 및 사업가 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안보와 경제를 “서로 의존하는 두 개의 날개”에 비유하며 강조했다. “안보가 없으면 투자자가 자본을 투입하지 않는다. 반대로 안보를 확립하더라도 경제로 뒷받침하지 못하면 그 안보는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표현은 다음과 같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더라도, 국민이 굶주리고 금융 순환·경제 성장·국내 생산이 없다면 우리는 견딜 수 없다.” 일부 매체는 이를 “우리는 굶주리고 있으며, 생존할 수 없다”로 요약해 보도했다.
이 발언이 이례적인 이유는 칼리바프 본인의 정치적 위치 때문이다. 그는 이란 이슬람혁명수비대(IRGC) 출신 사령관을 지낸 보수 강경파의 핵심 인물로, 현재 의회 의장이자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 왔다. 그런 인물이 군사력만으로는 체제를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이란 지도부 내부에서도 경제 상황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시사한다.
현재 이란 경제는 미국의 해상 봉쇄와 제재로 극심한 압박을 받고 있다. 이란 중앙은행 총재 압돌나세르 헤마티는 최근 국영 TV에 출연해 “석유 수출이 사실상 제로(0)에 가깝다”고 밝혔다. 미국 해군이 호르무즈 해협과 이란 항구를 봉쇄하면서 이란의 주력 수출 품목인 원유 판매가 거의 중단된 상태다. 이란 원유의 80% 이상을 사들이던 중국으로의 수출도 크게 줄었다.
인플레이션은 공식 통계로도 연간 80~90% 수준에 달한다. 이란 통계청에 따르면 2026년 5~6월 기준 전년 동기 대비 소비자물가지수가 88.6% 상승했고, 식품 인플레이션은 이보다 훨씬 높다. 식용유는 400% 가까이 올랐고, 육류 가격도 크게 뛰었다. 전쟁과 봉쇄로 인해 10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졌다는 추정치도 나온다. GDP는 급격히 위축되고 있으며, 리알화 가치는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압박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8월 20일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를 이란에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이어 23일에는 “경제 D-Day”를 선포하며 “이란 정권을 붕괴시킬 것”이라고 밝혔다. 베센트 장관은 “봉쇄와 제재를 결합한 원투 펀치”를 강조하며, 이란과 거래하는 국가들에게도 “우리와 함께할 것인가, 이란과 함께할 것인가”를 선택하라고 압박했다. 특히 중국을 겨냥한 발언이 눈에 띄었다.
칼리바프 의장은 같은 연설에서 이란이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도 밝혔다. “우리는 전쟁광이 아니며 전쟁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외교를 할 때 상대가 우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군사력과 외교를 병행해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하면서도, 경제 기반 없이는 군사력도 의미가 없다는 점을 솔직히 인정한 셈이다.
이란 내부에서는 이 발언을 둘러싼 해석이 엇갈린다. 의회 미디어센터 등은 “발언이 맥락을 잘라 왜곡됐다”며 “가상의 상황을 가정해 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국제 매체와 이란 반대파들은 이를 “체제 취약성을 고위 지도부가 공개적으로 인정한 드문 사례”로 보고 있다. 일부 강경파는 “약점을 드러내면 미국이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라며 칼리바프를 비판하기도 했다.
칼리바프의 바그다드 방문은 이라크와의 경제 협력 강화 목적도 있었다. 그는 양국 간 자국 통화 거래 확대, 민간 부문 협력, 국경 지역 인력 활용 등을 제안했다. 미국 달러 의존도를 줄이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란이 직면한 구조적 문제는 이라크와의 협력만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수준이다.
현재 이란은 군사력 유지와 지역 동맹 지원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하면서도, 국민 생활고는 갈수록 심화되는 모순에 빠져 있다. 미사일과 드론 개발, 대리 세력 지원에 자원을 쏟아붓는 동안 국내 생산과 고용, 물가 안정은 뒷전으로 밀려난 결과다. 칼리바프의 발언은 바로 이 모순을 지도부 스스로 인정한 신호로 읽힌다.
미국이 ‘경제 D-Day’를 본격화하고, 이란 내부에서도 경제 위기를 더 이상 숨기지 못하는 상황이다. 군사력만으로는 체제 생존을 담보할 수 없다는 고위 인사의 경고는, 이란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협상을 통해 제재 완화를 모색할지, 아니면 더 강경한 대결로 나갈지, 그 향배는 경제라는 현실 앞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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