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버멕틴, 기생충 치료 넘어 ‘항암제 후보’로 떠오르다

Posted by 아디노
2026. 2. 11. 12:25 Health

미국 국립암연구소(NCI), 이버멕틴의 항암 가능성 전임상 연구 착수

이버멕틴(Ivermectin)은 1970년대 중반에 발견된 거대고리 락톤(macrocyclic lactone) 계열 물질로, 인간의 다양한 기생충 질환 치료에 혁명적인 역할을 해온 약물이다. 특히 온코세르카증(강변실명증)과 림프성 필라리아증 등 열대성 기생충 질환 퇴치에 기여한 공로로, 발견자 오무라 사토시와 윌리엄 캠벨 박사는 201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 약물은 수의학 분야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며, 안전성과 저비용으로 전 세계적으로 널리 보급되어 있다.




지난 10여 년간 연구자들은 이버멕틴의 새로운 용도, 즉 '약물 재창출(drug repurposing)' 가능성을 탐구해 왔다. 이는 미생물 유래 물질에서 기존 항생제·항기생충 효과 외에 다른 생물학적 활성을 발굴하는 개념으로, 노벨상 수상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여러 전임상 연구(in vitro 및 동물 모델)에서 이버멕틴이 암세포 증식 억제, 세포 사멸(apoptosis 및 autophagy) 유도, 전이 억제, 혈관신생 억제 등의 효과를 보인다는 보고가 축적되었다. 대상 암종으로는 유방암, 대장암, 폐암, 췌장암, 간암, 교모세포종 등 다양한 고형암이 포함된다. 주요 기전으로는 PAK1/AKT 경로 차단, Wnt/β-catenin 신호 억제, mTOR/STAT3 경로 조절, ROS(활성산소) 증가를 통한 미토콘드리아 기능 장애 등이 제안되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미국 국립암연구소(National Cancer Institute, NCI)는 이버멕틴의 항암 잠재력을 공식적으로 탐구하기 시작했다. NCI 디렉터 앤서니 레타이(Anthony Letai) 박사는 최근 발언에서 “이버멕틴에 대한 충분한 보고와 대중적 관심으로 인해, NCI가 기관 내(intramural) 연구를 통해 이 물질의 암세포 사멸 능력을 보다 철저히 전임상 수준에서 검증했다”고 밝혔다. 그는 “몇 달 내에 결과가 나올 것”이라며 “우리는 이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NIH 산하 NCI가 직접 자금을 지원하며 진행 중인 연구로, 기존의 외부 펀딩 연구와 별도로 기관 내부에서 수행되는 프로젝트다.

다만 NCI 측은 기대를 과도하게 키우지 않으려는 입장도 분명히 하고 있다. 레타이 디렉터는 “이버멕틴이 암의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며, “신호가 강하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현재 인간 대상 임상 연구는 매우 제한적이다. 예를 들어 삼중음성 유방암 환자에서 펨브롤리주맙(면역항암제)과의 병용을 검토한 Phase II 시험이 있었으나, 일부는 철회(withdrawn)된 상태이며 대규모 확증적 임상(Phase III) 데이터는 아직 없다.

이버멕틴은 이미 FDA 승인된 안전한 약물로, 저렴하고 접근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어 재창출 후보로 매력적이다. 그러나 암 치료제로의 적용은 여전히 초기 탐구 단계에 머물러 있으며, 기존 표준 치료를 대체하거나 보완할 수 있다는 증거는 부족하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과장된 '기적의 암 치료제' 주장과 달리, 과학계는 신중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NCI의 이번 연구 결과가 향후 방향성을 제시할 중요한 단서가 될 전망이다.

추가적인 임상 데이터 축적과 엄격한 검증이 필요하지만, 기생충 퇴치라는 인류 보건의 승리를 이끈 이버멕틴이 암 분야에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지 주목된다.